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뛰고 있는 최향남의 개척정신과 도전의식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순(純)스포츠 <사진=홍순국 기자 제공> |
일단 시도부터 특별납니다. 그리고 2009 미국 야구 도전사 역시 ‘파란만장’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게 특별납니다. 그런데
최향남(38)에겐 이젠 그런 특별남이 오히려 일상적인 일로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험난하고 예측불허인 도전의 길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해진다고 해서 힘든 것이 쉬워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는 현재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알바버키에서 구원 투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만 서른여덟의 나이에 조카뻘보다 어린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리고 그들과 빅리그 승격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드넓은 미국 중서부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화려함에 익숙한 팬들에겐 마이너의 생활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트리플A는 그중 최상위 리그지만 그래도 빅리그와는 비교 자체가 안됩니다. 그 험한 일정을 힙겹게 소화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최향남 인터뷰입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너무 허망하게 방출된 것 같다. 기회가 제대로 주지 않은 것 아닌가.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이나 다른 외국 선수들도 많이 있었는데, 난 시범 경기에도 두 번 나갔고 자체 청백전에서도 몇 차례나 던졌다.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테스트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 선수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자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저녁에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받고 다음 날 아침 가서 락커를 비우는데 좀 허탈하기는 했다.
-LA 다저스와는 어떻게 연결이 된 것인가.
▶LA로 가서 지인의 집에 머물며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연아가 LA에서 대회를 한다고 해 가서 응원을 하고 싶었다. 전에 LG 트윈스에서 일하던 신욱과 연락이 돼 피겨스케이팅 대회를 가서 응원했는데 그 친구가 LA 다저스의 AC 코로기라는 극동담당자와 연결을 시켜줬다.(지난겨울 LA 다저스와는 두 번 트라이아웃을 한 인연도 있습니다.)
그래서 2주 계약을 하고 애리조나로 가서 루키리그에서 뛰며 테스트를 받았다.
-그 시기라면 루키리그도 경쟁이 치열한데.
▶그렇다. 진짜 루키들은 거의 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노장들이나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 등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2주가 다 되자 2주 연장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또 2주를 했는데 구단에서 또 2주 계약 연장을 하자고 해서 결국 6주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 정도라면 다저스가 상당히 관심이 있었다는 뜻 아닌가.
▶마지막 날 코로기씨가 왔더라. 저녁을 먹으면서 배드 뉴스(bad news)라며 트리플A나 마이너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한다면 멕시코리그나 다른 곳을 일단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라. 그때가 5월초였다. 여기까진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헤어지고 약 10분 후쯤에 코로기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러더니 내가 너무 럭키라면서 트리플A에 막 한 자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헤어지고 전화를 받기까지 약 10분의)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역시 포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리그나 멕시코리그라도 가서 뛰면서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 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계속 그래 왔던 것 같다. 이젠 그러려니 하고 가야 할 것 같다.(웃음)
-그럼 1년 계약을 맺은 것인가.
▶그렇다. 9월4일인가 시즌이 끝나는데 그때까지 계약을 했다. 곧바로 짐을 정리하고 프레스노 인가 원정 중인 알바커키 팀에 합류했다. 가보니 선수도 많지 않은 것 같고, 들어보니 팀을 물갈이하는 중이라고 하더라. 투수진에 나보다 나은 투수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더욱 희망이 생겼다.
-퍼시픽코스트 리그는 전통적으로 타력이 강하고, 특히 알바커키는 고지대라 투수들에겐 정말 힘든 곳인데 부딪혀 보니 어떤가.
▶홈런이 정말 많이 나온다. 나도 홈런 두 개를 모두 알바커키에서 맞았다. 뜬 공 같았는데 넘어가더라. 여긴 원래 그렇다고 코치가 말해줬다. 타자들은 시원시원하게 돌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컨트롤과 수 싸움 등에서 내가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 볼카운트 싸움도 해볼만 하고.
최향남은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알바버키에서 1승1홀드 2.70 ERA의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순(純)스포츠 |
-젊은 타자들과 힘으로 대결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힘으로 던질 때도 있다. 그러나 역시 제구력과 볼카운트 싸움이 중요하다. 가운데 던져도 될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 제구력과 수 싸움의 승부를 많이 한다. 밸런스도 좋고 타자들과의 대결은 자신이 있다.
-2006년 버팔로에서 마이너 생활을 해봤지만 정말 힘든 것이 마이너생활 아닌가.
▶이쪽이 더 힘든 것 같다. 그때는 시즌 동안 비행기는 한번 타고 다 버스로 이동했었다. 버스에서 잠도 잘 수 있었고. 그런데 여기 거리가 너무 멀어 거의 다 비행기 이동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항에 나가고 검사하고 이동하고, 어떤 때는 비행기 갈아타고 하다가 7시 경기인데 6시 반에 운동장에 도착할 때도 있다. 이동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원정 가면 호텔에서도 두 명이 방을 쓰니 불편한 점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가.
▶쌓아놓은 것을 까먹는 기분이다. 잠을 푹 못 자는 것도 있고, 공항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으니 먹을 것도 마땅치 않다. 한국에서는 먹는 것이 즐거움인데 여긴 생활을 하려니 억지라도 먹어야한다. 닥치는 대로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
-빅리그 승격 가능성은 보이나.
▶잘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2006년에도 금방 될 것 같았는데 결국 기회가 안 왔다. 현재 팀의 투수들을 보면 성적이나 실력으로는 충분히 될 것 같은데 다저스가 워낙 잘 나가니까. 메이저에 있는 투수들의 아주 많이 안 좋으면 모를까 현 상태에서는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는 것 같다. 하늘의 뜻에 맡기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기약 없는 도전일 수도 있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은가.
▶하고 싶은 것에 조금 가까워졌다는 것, 그것 하나 보고 버티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던져 후회하지 않는 도전을 하고 싶다.
-빅리그 마운드에 한번 서는 것이 최종 목표인가.
▶그 마운드에 한번 서는 것이 목표지만 그것으론 만족할 수 없다. 내가 꿈꿔온 것은 나보다 나은 선수들과 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메이저에서)시즌을 오래 뛰면서 강한 타자들과 진정한 승부를 해보고 싶다.
-건강히 보내고 꼭 꿈을 이루기 바란다.
▶감사한다. 아직 선수로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빅리그 마운드에 서는 날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온 힘을 기울여 야구를 할 것이다.
최향남은 14일 라운드록과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홀드를 기록했습니다. (라운드록은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2년 전 박찬호가 뛰었던 팀입니다.) 2이닝 무안타 4K의 완벽 구원이었습니다. 지난 3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이어갔습니다.
시즌 9경기에 나서 1승에 1홀드, 평균자책점은 2.70으로 뛰어납니다. 16.2이닝을 던지면서 안타는 9개뿐으로 피안타율이 1할5푼5리로 발군입니다. 삼진은 25개를 잡았고 볼넷은 4개뿐이 눈부신 제구력과 타자들을 제압하는 능력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타자들을 상대로는 피안타율이 9푼8리에 평균자책점이 1.38로 압도적이라 빅리그 불펜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찾을 수 있는 성적입니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요. 최향남이 뛰고 있는 알버커키 팀의 별명이 아주 특이합니다. 아이서톱스. 사전을 찾아보면 ‘아이서톱(isotope)-원자 번호는 같으나 질량수가 서로 다른 원소’라는 뜻이 나옵니다. 야구팀 별명치고는 가장 특이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최향남도 일반 사람들과 ‘원자 번호는 같은데 질량수는 좀 많이 다른’ 그런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2월만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인터뷰했을 당시 최향남은 ‘미국 메이저에서 2~3년쯤 야구를 하고 귀국해 1~2년쯤 더 국내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목표에 아주 근접하게 다가간 것으로 보이면서도, 또 달리 보면 목적지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당당히 가고 있는 그의 여정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꿈을 버리지 않고 도전하고 있으니 목적지에 곧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걸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전진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