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만큼 나를 화나게 한 것은 없었다."
평소 차분하고 전문가다운 태도로 잘 알려진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단단히 화가 났다.
그는 3일(현지시간) 미 상원 예산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국회의원들 앞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은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
그는 어떤 금융사보다 보수적이고 위험 관리에 철저해야 할 보험사인 AIG가 마치 헤지펀드처럼 방만하게 운영하다 금융시장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18개월 동안 나를 화나게 한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AIG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면서 "AIG는 규제 시스템의 큰 허점을 이용했고 금융상품을 감시할 부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G는 크고 안정적인 보험사에 붙어 있는 하나의 헤지펀드나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결국 무책임한 투자를 통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에 규제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버냉키 의장은 하지만 "금융위기 속에 대형 금융회사 파산은 경제 전체를 재앙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AIG를 지원해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방법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AIG 구제 결정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보험 가입자와 파생상품ㆍ신용보험 계약자 수천 명을 보유하고 있는 AIG가 몰락하면 세계 금융시장 안정을 황폐화시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AIG는 버냉키 의장이 지적한 대로 파생상품,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연계된 크레딧디폴트스왑(CDS) 거래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는 작년 4분기에만 미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617억달러 손실을 입었고 지난해 전체적으로는 993억달러 적자를 봤다.
이에 반해 상품투자 귀재로 알려진 짐 로저스는 이날 미 CNBC방송에서 "미국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는 AIG가 망하고 혹독한 2~3년을 보내는 편이 낫다"면서 AIG를 파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 위정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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